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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태 감독을 추억함

내가 그를 처음 만난것은 꿈만 가득했던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국내 처음으로 열렸다는 단편영화 상영회에 친구들과 함께 갔었고 그곳에서 주최측 일을 돕던 그를 만났다.
고등학생들이 와있는것이 신기했던 그는 우리에게 연락처를 주었다.
그가 보기에 우리는 영화 꿈나무쯤 되었을것이다.
대학에 들어가 그가 있던 서강 커뮤니케이션 센터에 자주 갔다.
갈떄마다 그는 비디오 테이프를 한아름 안겨주었다.
"오늘은 우디알렌을 봐라" "오늘은 스콜세즈다" "오늘은 아키라 영화들…"
나는 센터의 방 한쪽 구석에 모니터를 놓고 혼자 앉아 하루종일 그 비디오들을 봤다.
화질도 조악하고 영문 자막밖에 없는 복사판들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 뒤로 낯 모를 사람들이 지나 다녔고 그 중에는 아직 학생이던 박찬욱 감독도 있었던것 같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가끔 그는 언더스탠딩 무비나 히치코크등의 원서를 복사해서 전해주고는 했다.
그럴때마다 나는 암호문이라도 받은 레지스탕스의 마음으로 사전을 찾아가며 열심히 그리고 심지어 경건하게 그 문자들을 읽었다.
충무로를 싹 다 뒤집어 놓겠다는 그의 호기가 싫지 않았던.. 나 역시 가슴 가득 온갖 호기와 객기가 가득했던 스무살 시절이었다.
군대를 가고, 학교를 마치고… 많은 인연들이 그렇듯이 언제가부터 그와도 연락이 끊어졌고 오랜동안 만날수 없었다.
그가 감독이 되어 영화를 만들었다는 뉴스를 보았고,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가끔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20년이 넘도록 그를 다시 만나게 되지는 않았다.
나도 영화를 했고 그 역시 영화를 계속 했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는.. 어느 자리에선가 마주칠게 될줄 알았다.
그것이 화려한 영화제 파티이든, 시끄러운 시사회 뒷풀이든, 어느 편집실이나 녹음실에서라도… 꼭 다시 만나게 될꺼라 생각했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하고 싶은 얘기가 참 많았다.
물어보고 싶었다. 나 기억 나요? 그리고 자랑하고 싶었다. 그때 그 꿈나무가 이제 감독이 됐다구요…
이십년을 넘어 그를 다시 만난것은 참으로 야속하게도 그의 빈소였다.
절을 올리고 영정을 물끄러미 보며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봤다.
용태형..나 기억나요? 나도 이제 감독인데… 내가 만든 영화 봤어요? 그게 나라는거 알았어요?
하지만 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사진속에서 사람 좋게 웃고 있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수도 없었다.
빈소 주위를 서성대며 담배를 세대나 피웠다.
우리가 그렇게 사랑하던 영화에서처럼 그가 불쑥 초현실적으로 나타나 "너 왔구나.. 오랜만이다." 하며 씩 웃을것 같았다.
그러면 놀라지 말고 같이 웃으며 담배나 나눠피고 싶었다.
아무와도 아무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혼자 빈소를 나왔다.
눈이 녹아 질퍽한 길을 밟으며 질문 대신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 될 인사를 건넸다.
내 인생의 첫번째 영화 멘토이자 영화 스승이었던 김용태 감독님.. 용태형.. 안녕히 가세요 .
그때 얘기 못했던것 같은데..
참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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